총선
총선
총선
총선

문화일반

[율곡에게 길을 묻다]율곡 이이·백인걸 등의 발의로 창건된 파산서원…서원철폐령 때도 남아 있던 곳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율곡이 세운 서원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에 있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0호 파산서원. 선조 1년 1568년 율곡 이이, 백인걸 등의 관료와 유생들의 발의로 만들어진 파산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남아 있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였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에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0호 파산서원이 있다.

이 서원은 1568년 선조 1년 백인걸(白仁傑)·이이(李珥) 등 관료와 파주 일대 유생의 발의에 의해 적성현감 성수침(成守琛)을 제향하고, 유생의 장수처(藏修處)로 삼기 위해 설립됐다.

성수침의 위패를 모신 이곳은 1650년(효종 1년) 사액서원이 됐고 1628년(인조 6년) 성혼을, 1705년(숙종 31년) 백인걸을, 1785년(정조 9년) 성수종을 추가 배향했으며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남아 있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였다.

율곡은 당시 조선사회를 오래된 집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 표현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아 경제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경제개혁의 첫 번째가 잘못된 세금제도를 고치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돈이 없는 백성들에게는 좀 더 가벼운 세금을 물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강조한 것이 바로 백성들의 교육이다. 백성들의 교육에 대해 양반과 평민, 서얼의 교육 참여를 허용하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했으며 노비에 대해서도 가혹한 형벌을 금지하라고 주장했다.

조선을 개혁하기 위해 선조를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직언을 하며 개혁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선조를 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되자 고향 파주로 돌아가 백성들을 교육할 방법을 찾는다. 또 절친이었던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과 교류하며 고향 땅에 선비를 기를 수 있는 서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나라가 변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했고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격몽요결'이다. 격몽요결은 일반 학도들에게 도학의 입문을 지시하기 위해 1577년에 간행한 유학입문서다.

율곡은 격몽요결 서문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될 수 있는 조건이 곧 학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또 성학집요에서도 교육방법으로 지행병진을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지 않으면 이미 선비가 아니라고 했다. 이와 같이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지와 행을 아울러 함께 행하는 것은 현대교육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글=조상원기자·사진=권태명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