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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지방 소멸 위기와 취업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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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재 율곡연구원장

얼마 전 중앙 일간지 하나에 눈이 가는 기사가 실렸다.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짚어보는 기획취재의 한 꼭지로, ‘강릉 소녀들의 그 후'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2008년 강릉 A여고를 졸업한 3학년1반 동창생 36명의 졸업 후 행적을 추적한 것이 주 내용인데, 이에 따르면 소재가 파악된 30명 가운데 수도권 거주자는 16명으로 절반이 넘었고, 특히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경우는 예외 없이 수도권에 정착했다.

지방 사는 서러움을 이들은 온실 밖 경쟁의 첫 번째 관문인 대학 진학 때부터 경험했다. 이른바 ‘인서울'이 목표였지만 실력보다 입시정보에 뒤처져 손해를 본 경우가 많았다. 취업은 이들이 수도권 시민이 되느냐를 판가름하는 두 번째 관문이었다. 비록 대학은 수도권 입성에 실패했더라도 직장만큼은 인서울을 이루려 노력했으나 이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대학 졸업 후 고향에 머물며 취업 준비를 했던 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그래픽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 2년간 매주 일요일 왕복 8시간을 버스에 흔들리며 서울을 오르내렸다. 자신이 그렇게 버스에 갇혀 있는 동안 서울 친구들은 더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취업도 확실히 그들이 빨랐다. 그런 불이익을 극복하며 취업을 계기로 5명이 추가로 서울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취업 후에도 불공평은 기다리고 있었다. 지방 출신은 월세와 생활비로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출해야 했지만, 집이 서울인 사람은 그만큼을 절약할 수 있어 돈을 더 빨리 모았다.

이 기사는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방안은 출산율 제고가 아니라 청년들의 취업 문제 해결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청년들이 머물러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기사는, 비수도권 거주자 가운데 공무원을 비롯해 공공영역에 취업한 사람의 비율이 40%에 달하지만 수도권 거주자는 반으로 뚝 떨어져 19%(3명)만 이에 해당한다고 전한다. 대신 수도권 거주자의 직업은 영화마케터, 배우,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자산운용사 직원, IT 서비스 기획자, 미디어 콘텐츠 운영자 등으로 다양하다. “강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카페 아니면 공무원”이라는 이들의 자조가 근거 없는 패배감이 아님을 보여준다.

직업은 생계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소득이 높아지면서 이보다는 자아 실현을 위한 계기로서의 의미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은 기업이나 공장 한두 개를 유치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취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 더 급선무다.

다행히 유비쿼터스(Ubiquitous·사용자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를 기반으로 초연결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2008년 강릉 A여고 3학년1반 동창생들의 경우와 달리, 지금은 대학 교육은 물론 취업에 필요한 교육프로그램, 나아가 근무환경까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장소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못된다. 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양한 취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청년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방 소멸', 걱정을 넘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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