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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777년(정조 1)부터 1782년(정조 6)까지 6년 동안 강릉 지역에서 하남재의 서원화로 인해 벌어진 일명 ‘하남재 시비河南齋是非’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반대쪽 입장은 전체의 내용을 구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일부만을 수록하고 심씨 일문의 변론이 주를 이룬다. 하남재 시비의 특징은 노론老論의 당색黨色을 띤 두 세력 간에 벌어진 향전鄕戰이다 보니, 당파적 성향에 따른 갈등 양상을 보이는 여타 향전과는 달리 강릉 사족과 심씨 일문간의 명분론 확보를 위한 분쟁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하남재지河南齋志》는 맨 앞에 〈하남재 역대 일람표河南齋歷代一覽表〉를 두어 1537년(중종 32)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이 이정 부자二程夫子(정호鄭顥와 정이程頤)의 화상을 구했을 때부터 1782년(정조 6) 변무辨誣의 글을 올렸을 때까지 관여한 사람들을 연도순으로 기록하고, 이어 중요 사건부터 이 책을 초록抄錄한 1949년까지의 소요 기간을 기록하였다. 〈하남영당 사적河南影堂事蹟〉을 통해서는 어촌이 이정 부자의 화상을 구해온 것, 하남동에 영당을 지어 이정 부자의 영정을 봉안하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과 어촌 심언광을 추가 배향한 과정을 적었다. 그 뒤에는 추가 배향과 관련한 편지 및 의식 절차를 수록하였는데, 이정 부자의 〈봉안 축문[奉安祝]〉과 우암 및 어촌의 〈추가 배향 축문[追配祝]〉, 우암이 지은 〈이정 선생 화상각기二程先生畵像閣記〉, 우암이 기문記文과 관련하여 송규렴宋奎濂과 심세강沈世綱에게 답한 〈송도원 【규렴】에게 답함(答宋道源【奎濂】〉과 〈심상사 【세강】에게 답하는 편지(答沈上舍【世綱】書)〉, 〈화양문인 어록華陽門人語錄〉, 이담李橝이 축문을 써서 심징沈澄에게 보내며 쓴 〈심 생원 【징】에 답하는 편지(答沈生員【澄】書)〉, 〈기력記歷〉, 〈입규立䂓〉, 〈중정홀기中丁笏記〉, 〈중정 축문[中丁祝]〉, 〈분향홀기焚香笏記〉, 〈정일집사방丁日執事榜〉, 〈삭망분향집사방朔望焚香執事榜〉 순으로 배치하였다.